리더가 되면 통과의례처럼 겪는 것이 자신에 대한 뒷담화를 목격하는 것이다. 리더들은 구성원이 자신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고, 우연히 구성원 모니터에 띄워진 메시지를 보거나 전언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 처음 자신의 뒷담화를 직면한 리더들은 심한 충격에 휩싸이곤 한다. ‘나에 대한 불만이 저렇게 많다니..’, ‘겉으로 내색이 없어 원만한 관계인줄 알았는데 그 동안 뒤에서 내 욕을 하고 있었던거야?’ 등 배신감에 힘들어 하다 “이제 사람이 무섭다”라고 말하며 “앞으로는 일적으로만 대할거야”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반면 리더 경험이 오래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뒷담화를 리더에게 지워지는 멍에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들은 구성원들에게 “나 없는 데서 여러분끼리 내 뒷담화 하면서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 푸세요”라고 농담조로 뒷담화를 권유한다. 한 리더는 “리더의 위치에서 구성원들에게 늘 좋은 소리만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 구성원들도 숨통을 틔우려면 자기(리더)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노련함에서 나오는 지혜일까, 자조적인 말일 뿐일까?
독에는 독으로 맞선다
직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험담, 뒷담화 등의 부정적 가십은 조직 내에 큰 골칫거리이다. 이것이 구성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며 결국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용심리학 저널(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에 게재된 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 부정적 가십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뤼 중(Rui Zhong) 교수 연구팀의 “독에는 독으로 맞선다(Combat Poison With “Poison)” 라는 제목의 논문은 상사에 대한 구성원의 뒷담화가 비인격적 감독(abusive supervision)이 성과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어떻게 약화시키는지 보여 준다. 비인격적 감독이란 상사의 언어적, 비언어적 적대적 행동을 뜻하는 것으로, 한심하게 쳐다보거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것 밖에 못 하나?”라고 면박 주는 것과 같이 망신을 주거나 비난하고 무시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업무와 직장 생활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롤 모델로써 기능한다. 다르게 말하면, 구성원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리더의 가치나 행동을 학습하게 된다. 따라서 비인격적 감독은 자연스레 비인격적 풍토로 이어지기 쉽다.
비인격적 감독이 팀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비인격적 감독은 “구성원 간의 공격성을 증가시키고, 대인 신뢰 감소, 팀 성과 저하, 팀원의 이직 의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연구자들이 비인격적 감독의 부정적 영향에 집중할 때, 뤼 중 교수는 이 둘의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요소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비인격적 감독이 팀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구성원들이 리더의 비인격적 행동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리더와 거리두기를 선택한다면 부정적 영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구나’라고 리더의 비인격적 행동을 내재화하는 것이 아니라 ‘저건 바람직하지 않아,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와 같이 리더의 행동과 거리를 둔다면 비인격 감독의 부정적 영향을 약화시킬 것이라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거리두기 행동 중 하나가 리더에 대한 부정적 가십, 즉 뒷담화라고 보았다.
뤼 중 교수와 연구진은 자신들이 가정이 맞는지 273개 팀(팀원 1,545명)을 대상으로 현장 연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연구진의 가설대로 리더에 대한 구성원들의 뒷담화가 활발한 팀일수록 비인격적 감독이 팀의 공격성을 높이고 신뢰를 파괴하는 현상이 약해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시 말하면, 리더가 비인격적 감독 행태를 보일 때 팀의 공격성은 높아지고 팀원들 간의 정서적 신뢰가 약해지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리더에 대해 뒷담화가 높은 팀들은 이러한 경향이 약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팀원들의 뒷담화가 일종의 ‘완충제’ 또는 ‘해독제’ 역할을 한 것이다.
뒷담화가 해독제 역할을 하는 매커니즘
연구자들은 뒷담화가 비인격적 감독의 부정적 영향을 약화시키는 심리적 매커니즘으로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뒷담화가 구성원으로 하여금 리더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새로운 직장에 입사했다고 가정해보자. 소속 팀의 리더는 대놓고 사람을 무시하고 걸핏하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등의 비인격적 감독 행태를 보인다. 당신이 이러한 리더의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이것을 검증할 기회가 없다면 이내 팀 적응을 위해 ‘아, 여기는 이런 곳이구나’, ‘여기는 완전 정글이네’라고 생각하며 리더의 행동을 롤 모델 삼아 그 풍토에 금새 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리더에 대해 다른 팀원들과 부정적인 평가를 나누면 ‘아,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래, 이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야, 나는 저런 행동 하지 말아야지’와 같이 리더가 안티 롤 모델(anti-role-model)로 기능하게 된다. 그래서 리더의 행동을 학습하여 유사한 행동을 보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심리적 매커니즘은 연대감이다. ‘함께 욕하면서 친해진다’라는 말처럼 팀원들과 비인격적 리더에 대해 험담을 나누면 팀원들 간의 유사성 인식(예: ‘다른 팀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나’)을 높여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보통의 상황에서는 팀의 비인격적 풍토가 팀원 간의 정서적 신뢰를 약화시키지만, 리더에 대한 뒷담화가 높은 팀은 그 과정에서 얻은 동질감, 연대감이 비인격적 풍토가 신뢰에 미치는 영향을 완충시킨다는 것이다.
리더에 대한 뒷담화를 장려해야 할까?
본 연구를 보고 “아하, 리더에 대한 뒷담화를 허용해도 되겠군”이라고 성급히 결론 짓지 않기를 바란다. 연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비인격적 감독이 팀의 공격성을 높이고 정서적 신뢰는 감소시켜 팀 성과를 낮춘다는 것이다. 리더에 대한 뒷담화는 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비인격적 풍토가 제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처럼 악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생적 대응에 가깝다.
다르게 말하면, 조직 운영의 책임자나 HR은 비인격적 감독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뒷담화의 정적 기능에 집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 또한 이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부정적 가십은 비인격적 감독과 같은 문제적 인사나 조직 이슈를 알려주는 신호로 기능”한다고 지적하며, 뒷담화가 발생하는 그 이면을 조사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여 이것을 조직 운영을 개선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말 정말 흥미로운 연구입니다! 흥미로운 소재와 교훈까지 현실적이고 의미있네요. 좋은 연구 쉽고 재미있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